[5.18 당시 국보위의 역할과 참여 인물들]
● 앵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신군부는 곧바로 국가보위 비상대책 위원회, 국보위를 발족시켜서 5공 출범 정지작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국보위의 역할과 자의로 또는 타의로 국보위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도인태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1980년 5월31일,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광주항쟁을 폭력으로 진압한 신군부는 국가보위 비상대책 위원회를 앞세워 권력의 배후에서 전면으로 등장했습니다.
약칭 국보위는 헌법조항 어디에도 설치근거가 없는 불법적인 기관이었지만 입법과 행정기능을 총괄하는 전행을 휘둘렀습니다.
30명의 국보위 상임위원 중에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해 신군부의 현역장성 18명이 포진했고, 내무, 재무, 문공, 보사, 교체분과 위원회의 위원장 자리를 모두 현역군이 맡았습니다.
의장이었던 최규하 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많은 법조계, 관계, 학계 인사들이 새로운 권력을 향해 모여들어 자신들의 지식을 제공했습니다.
국보위는 같은 해 9월 27일, 간판을 내릴 때까지 150일의 통치기간동안 개혁과 사회악 일소라는 미명 아래 공무원과 국영기업체 직원 8,600여 명을 해직하고 3만 8,000여 명의 시민을 삼청교육대로 보냈습니다.
또 강압적인 방법으로 170종이 넘는 출판물을 폐간시키고 700명이 넘는 언론인들을 직장에서 쫓아냈습니다.
국보위가 해체된 이후에도 국가보위 입법회의가 국보위의 인맥을 계승했습니다.
국보위와 입법회의 출신 인물들은 5,6공화국을 통해 각 분야에 요직을 맡았고 지금도 상당수 인물들이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역 공직자로는 오명 건설교통부 장관과 한승수 청와대 비서실장, 그리고 한이헌 경제수석 등이 국보위에 참여했습니다.
국회의원으로는 민자당의 금진호, 이춘구, 김한규, 차 명, 허삼수, 안무혁 의원이 국보위의 상임위원이나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자민련의 박철언 부총재도 국보위의 법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법조인으로는 최환 서울지검장과 정경식 헌법재판소 재판관, 현홍주, 손진건 변호사 등이 국보위 출신 인사들입니다.
MBC뉴스 도인태입니다.
(도인태 기자)
뉴스데스크
5.18 당시 국보위의 역할과 참여 인물들[도인태]
5.18 당시 국보위의 역할과 참여 인물들[도인태]
입력 1995-11-29 |
수정 199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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