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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걸작의 풍모 '토리노의 말'

[새영화] 걸작의 풍모 '토리노의 말'
입력 2012-02-08 14:54 | 수정 2012-02-0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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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영화] 걸작의 풍모 '토리노의 말'
    상영시간이 2시간26분에 달하지만 주요 등장인물은 서너 명에 불과하다.

    영화의 전체 대사는 일반 할리우드 영화의 2분 분량 수준이다.

    10분이 넘는 한 신(Scene)이 거의 한 컷으로 이뤄진다.

    게다가 흑백이다.

    한마디로 지루하다.

    영화는 상영 중에 빨리 극장 문을 박차고 나서고 싶은 욕구를 10분 단위로 건드린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영화가 끝나고 몇 시간 안에 그 이미지는 대뇌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곰삭은 염세주의도 착 달라붙는다.

    그때쯤이면 이 영화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사탄탱고'(1994)로 세계 영화계를 놀라게 한 헝가리의 영상시인 벨라 타르 감독이 마지막 연출작이라고 선언한 '토리노의 말' 얘기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한 부녀가 바람이 그치지 않는 황무지에서 보내는 여섯 날의 이야기를 담았다.

    두 부녀를 방문한 마부의 친구, 그리고 우물을 노린 집시들이 등장인물 전부다.

    살을 에는 바람이 멈추지 않고, 낙엽이 이리저리 유영하는 황무지에 마부(에리카 보크)와 그의 딸(야노스 데르지)이 산다.

    두 부녀는 그저 때가 되면 감자를 먹는다.

    메마른 바깥 풍경을 창문을 통해 우두커니 쳐다보는 게 일이라면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닿는 지평선에는 희망을 상징하는 듯한 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다.

    집시들이 찾아와 우물을 만지고 나서 갑자기 우물이 마른다.

    식수가 떨어진 부녀는 말과 수레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한다.

    그러나 삭풍에 뒤섞인 절망이 그들의 허망한 희망을 꺾어놓는다.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바람은 그들의 발길을 되돌리게 하고, 부녀는 또다시 물 한 방울 없는 집에 갇혀 살아야 한다.

    삶에 대한 염세주의와 죽음, 그리고 인간에 대한 불신이 영화에 스며 있다.

    인간이 무언가에 욕심낼 때, 그리고 파닥거리는 욕심이 대상에 닿게 될 때, 사람이건 물건이건 그 대상은 파괴되기 일쑤라고 영화는 말한다.

    "인간의 순수한 본성은 결국 파멸하고 타락한다.

    인간은 무언가를 나쁘게 만들어서 그걸 취한다"는 마부친구의 대사는 더욱 직접적이다.

    탐욕에 탐닉한 집시들이 우물에 손을 대자, 다음 날 우물이 메말라 있는 장면을보여주는 부분은 그같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한다.

    이는 현실세계에 대한 은유로도 보인다.

    마부의 딸에게 "우리와 같이 미국에 가자"며 깡패처럼 우물을 빼앗으려는 집시들의 행동은 패권을 추구하는 제국주의자 미국의 모습과 오버랩한다.

    놀라운 이미지의 향연은 이 영화를 걸작의 반열로 끌어올린다.

    특히 휘몰아치는바람을 뚫고 전진하는 마부와 말의 모습을 롱테이크(오래 찍기)로 구현한 오프닝은 발군이다.

    캐릭터의 행동과 감정의 리듬을 유려하게 담아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풍부한 감성을 전달한다.

    격렬한 이미지와 포갠 거친 바람 소리는 그 어떤 음악보다도강렬하다.
    [새영화] 걸작의 풍모 '토리노의 말'

    '토리노의 말'이라는 제목은 독일 철학자 니체의 일화에서 따왔다.

    1889년 토리노. 니체는 마부의 채찍질에도 꿈쩍 않는 말에게 달려가 목에 팔을 감으며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라는 말을 웅얼거린다.

    그리고 10년간 그는 식물인간에 가까운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사탄탱고'를 쓴 소설가 라즐로 크라스나호르카이가 벨라 타르 감독과 공동으로각본을 썼다.

    '토리노의 말'은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과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2월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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