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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고대문화의 아이콘 옹관

영산강 고대문화의 아이콘 옹관
입력 2008-08-06 14:54 | 수정 2008-08-0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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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1층 고고관 중간쯤에는 제법 규모가 큰 옹관 '1세트'가 아가리를 맞댄 채 가로 놓여 있다. 이는 영산강 유역 고대문화가 동시대 한반도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전통을 갖고있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품이다. 출토지는 전남 영암군 내동리 초분골 고분.

    구멍이 뚫린 아가리끼리 잇대 놓고 시신은 그 안에다가 안치한 것이다.

    이런 형식을 합구식(合口式)이라 한다. 물론 옹관 하나만을 이용해 무덤을 만든 경우도 많다.

    이 초분골 고분 옹관 중 큰 것은 길이 169㎝에 아가리 지름 98㎝이며, 작은 것은 길이 113㎝에 아가리 지름 80㎝다. 따라서 두 개를 잇대 놓으면 단순 계산으로는 총길이 282㎝ 정도가 되어야 하지만, 현재 박물관에 진열된 상태를 기준으로 할 때 총길이는 275㎝다. 큰 옹관이 작은 옹관 아가리 일부를 문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전남 무안의 목포대박물관. 이곳 상설전시실은 옹관을 위한 공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옹관 출토 유물을 그득 선보인다. 이 박물관은 영산강 유역 옹관묘를 가장 많이 발굴한 기관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다양한 옹관을 내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무안 구산리 유적 출토품. 역시 합구식인 두 옹관을 합치면 총길이는 무려 416㎝에 이른다.

    최근 나주에서 '세움 형식' 옹관묘가 발견되긴 했지만, 대체로 옹관은 가로로 놓인 상태로 발견된다.

    목포대박물관에서 일부 옹관은 '세움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특별한 전시기법이 아니다. 이유인즉, 출토 옹관이 하도 많아, 전시 공간이 부족함을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일부는 세울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박물관은 말한다.

    한데 이 '세움 전시'는 뜻밖에도 영산강 유역 고대문화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옹관이 얼마나 우람한 지를 맛보는 데는 제격인 효과를 연출한다.

    원래 옹관묘라는 묘제(墓制)는 한반도에서는 이미 청동기시대 이후 현재까지도 일부 지역(특히 어린이 매장)에서 사용될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지만, 영산강 유역에서는 5세기 이후 6세기 초반에 걸친 약 100년 동안 초대형 옹관에다가 시신을 부장하는 전통이 뚜렷이 관찰된다.

    그에 걸맞게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지금의 전남 지방 곳곳에서는 이런 대형 옹관이 일일이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양이 출토됐다.
    그렇다면 이런 옹관을 도대체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구워냈을까?
    사실 이는 고고학계를 괴롭힌 오랜 체증 중 하나였다.

    현재까지 이 지역 대형 옹관의 제작 기법에 대해 대해 학계가 알아낸 것은 두 가지 정도. 구운 온도가 800-900도 정도로 다른 토기나 도기류에 비해 소성(燒成) 온도가 낮은 편이며 사립(沙砬) 즉, 모래 성분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뿐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대형 옹관을 구웠던 가마가 도무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옹관 고고학의 관심은 최근 들어 온통 나주 오량동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대형 옹관 가마터라고 생각되는 가마터가, 그것도 수십 기가 발견되고 조사됐기 때문이다.

    이 유적이 알려진 것은 2001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 7월 오량동 산 27번지 일대 속칭 우두머리산이라는 해발 20m 가량 되는 언덕에서 대형옹관을 구운 가마터 흔적들이 공동묘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뒤 동신대박물관과 목포대박물관이 긴급 수습 조사를 벌여 가마터 15기를 발굴한 것이다.

    이에 힘입어 오량동 유적은 2004년 8월에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이 옹관 가마라는 데는 이견이 적지 않았다. 가마 내부에서 무수한 옹관 조각들이 발견되기는 해도, 그것은 이곳에서 굽던 옹관이 깨진 흔적이라기보다는 가마를 쌓는 데 활용했던 일종의 건축 재료라는 반박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더불어 옹관 가마 반대론자들은 오량동 가마는 최대 2m 가량이나 되는 옹관을 굽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는 반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오량동 가마가 대형 옹관을 굽던 곳이라는 견해는 점점 설 땅을 잃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추세가 급변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5년 10월에 문을 연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중점 조사 대상 지역 중 하나로 오량동 가마터를 선정하고, 2008년까지 대대적인 추가 확장 발굴조사를 벌이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마터 사정이 변한 것은 아니다. 요즘 들어 발견되는 오량동 가마 또한 2001년 조사 때 드러난 구조와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세밀한 조사와 관찰, 그리고 색다른 분석이 시도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연구소는 무엇보다 오량동 가마 구조가 소위 연소실과 소성실을 계단식으로 나눈 오름 가마이긴 하지만, 그 경사가 완만한 점에 주목한다. 이런 가마는 적어도 1천도 이상의 고온을 급격히 내기 위한 구조가 아닐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비교적 낮은 온도로 서서히 가열하는 구조라는 게 오량동 가마의 특징이다.

    그렇지만 대형 옹관들이 자리잡기에는 가마는 폭도 작은 편이고 높이도 낮은 편이다. 다만 한가지 이상한 점은 가마 지붕이 그다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가마 지붕은 후대에 파괴돼 없어졌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이에 연구소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현재도 질그릇을 굽는 옹기장이 5명을 최근 초청해 오량동 가마터와 옹관 유물들을 보여주고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가마터에서 대형 옹관들을 구울 수 있겠습니까?"
    뜻밖에도 그들의 대답은 의뢰로 단순하고, 그리고 똑같았다.

    "왜 못 구워? 못 굽는 이유를 말해봐?"
    그러면서 어떤 옹기 장인은 이런 말도 했다.

    "옹기라곤 구워 보지도 않은 사람들(고고학자)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궁리하니깐 답이 나오나. 폭이 작아? 뭐가 작아. 세워서 구우면 되잖아. 가마 지붕이 낮다고? 왜 지붕이 있어야 해? 저런 가마에 내가 옹관을 굽는다면 지붕은 대나무 같은 것으로 얽어 진흙을 발라 만들겠다. 옹관을 구워 낸 다음에 지붕은 뜯어버리면 되잖아?"
    나아가 옹기 장인들은 옹관에 사립질이 많아 구울 때 쉽게 터지지 않냐는 질문에는 "얼마든지 구울 수 있다는 것은 실제로 보여주겠다"고 단언하고 나섰다.

    심영섭 나주문화재연구소장은 "현재 이분들이 참여하는 옹관 재현 실험이 이뤄지는 중"이라면서 "이런 실험 고고학을 통해 대형 옹관의 미스터리도 조만간 많이 풀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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